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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투기 미사일 전차

625전쟁 기간, 6.25전쟁사망자 수, 참전국가 수 22개국

by sk2nd 2024. 11. 16.

목차

    6.25 전쟁 참전국가와 국제적 지원

    6.25 전쟁, 흔히 한국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빠르게 점령하였고, 전쟁 초기의 혼란 속에서 남한의 방어선은 급격히 붕괴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대한민국 정부와 유엔은 긴급히 방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6.25 전쟁 기간

    1950년 7월 초, 유엔은 긴급 안보리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다수의 유엔 회원국들이 군사력을 파견하게 됩니다. 전쟁 초기 대한민국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게 되었으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을 계기로 전세를 역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북한군의 후방을 강타하며 서울을 재탈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유엔군과 대한민국군은 북진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0년 10월 말부터 중국군이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로 개입하면서 전황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중국군은 압록강을 넘어 대규모 공세를 펼치며 유엔군을 후퇴시키고, 서울은 다시 한번 북한군과 중국군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이후 유엔군과 대한민국군은 재반격을 통해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하였으며,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전쟁은 주로 고지전과 참호전 형태로 이어지며, 쌍방의 치열한 공방이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포로 문제와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으며, 협상은 수많은 난관 끝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마무리되었습니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단지 휴전을 선언한 것이었기 때문에 남북 간의 대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남과 북의 대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들이 연루된 국제적 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유엔군으로서 22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하였으며, 이들은 전투 병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군사적,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면 공산 측에서는 북한, 중국, 그리고 소련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전쟁에 깊이 개입했습니다.

    6.25 전쟁의 참전국은 총 22개국으로(육이오전쟁 참전국 16개국 등으로 불리는 이유는 전투 파병은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으로 참전의 정의에 따라 16개국 혹은 육이오전쟁 참전국 22개국으로 표기됩니다.), 이들 국가는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직접적인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의료 및 물자적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럼 이 전쟁에 참전한 국가들과 그들의 기여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6.25 전쟁 참전 국가(유엔군)

    6.25 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국가들은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전쟁에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미국을 필두로 여러 나라들이 육군, 해군, 공군을 파견하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다방면의 전투와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의료지원 파견국 명단에서 독일이 빠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5년 전까지만 해도 육이오 전쟁 참전국 수는 21개국이었습니다. 의료지원을 한 독일을 포함하면 625 전쟁 참전국가 수는 22개국이 됩니다.

    유엔군 625 전쟁 참전국 22개국 파병 병력 및 사망자 수

    아래 목록은 유엔군 625전쟁 참전국 22개국의 파병병력 수와 희생된 사망자 수입니다.

    • 미국:
      파병 병력 1,789,000명, 전사자 33,686명. 미국은 유엔군 측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하였으며, 육해공 전력을 총동원하여 전쟁 전반에서 대한민국의 방어를 주도했습니다. 또한 92,13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3,737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쟁 초기부터 끝까지 대한민국의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대규모의 물자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 민간 경제의 안정을 도왔습니다.
    • 영국:
      파병 병력 56,000명, 전사자 1,078명. 영국군은 해군과 공군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해상 작전과 항공 지원을 통해 전쟁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 캐나다:
      파병 병력 26,791명, 전사자 516명. 캐나다는 가평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이는 한국과 캐나다 간의 우호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튀르키예(구 터키):
      파병 병력 21,212명, 전사자 966명. 터키는 지형과 기후에 적응하여 용맹한 전투를 수행하였으며, 터키군의 활약은 6.25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 호주:
      파병 병력 17,164명, 전사자 340명. 호주는 공군 지원과 지상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 필리핀:
      동남아 외노자라고 무시하는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파병을 해주었으며 고귀한 피를 흘렸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병 병력 7,420명, 전사자 112명. 필리핀군은 지상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했습니다.
    • 태국:
      파병 병력 6,326명, 전사자 129명. 태국군은 주로 지상 전투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 네덜란드:
      파병 병력 5,322명, 전사자 120명. 네덜란드군은 해군과 육군을 통해 전쟁에 기여했습니다.
    • 콜롬비아:
      파병 병력 5,100명, 전사자 213명.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참전하여 육해군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그리스:
      파병 병력 4,992명, 전사자 192명. 그리스는 항공 수송 및 지상 전투에서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 뉴질랜드:
      파병 병력 3,794명, 전사자 23명. 뉴질랜드는 해군 및 육군 전력으로 대한민국을 지원했습니다.
    •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와 에티오피아 황제. 그누구보다 진심으로 싸워준 아프리카의 혈맹.
      파병 병력 3,518명, 전사자 121명. 에티오피아는 황제 친위대인 강뉴부대를 파견하여 뛰어난 전투 성과를 남겼습니다.
    • 벨기에:
      파병 병력 3,498명, 전사자 106명. 벨기에는 지상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 프랑스:
      비록 인* *은 유럽짱* 프랑스도 파병해 주었습니다. 52 대 5000, 영화 '300' 같았던 지평리 전투의 프랑스 군...감사합니다.
      파병 병력 3,421명, 전사자 262명. 프랑스군은 지평리 전투 등에서 강력한 저항을 펼치며 중요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파병 병력 826명, 전사자 34명. 주로 공군 전력으로 참여하여 항공 작전에 기여했습니다.
    • 룩셈부르크:
      파병 병력 85명, 전사자 2명. 소규모 병력이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의료 및 인도적 지원 국가

    6.25 전쟁에는 전투 병력뿐만 아니라 의료 및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인도는 627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야전 병원을 운영하였고,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역시 각각 의료진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지원하였습니다.

    의료 지원 국가 및 지원 규모

    • 인도:
      파병 병력 627명, 지원 형태: 야전 병원 운영
    • 노르웨이:
      파병 병력 623명, 지원 형태: 이동 외과 병원 운영
    • 덴마크:
      파병 병력 630명, 지원 형태: 병원선 운영
    • 스웨덴:
      파병 병력 1,124명, 지원 형태: 적십자 병원 운영
    • 이탈리아:
      파병 병력 128명, 지원 형태: 적십자 병원 운영
    • 독일:
      파병 병력 117명, 지원 형태: 적십자 병원 운영

    이들의 지원은 부상자 치료와 민간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민간인과 병사들에게 의료적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생존율을 높이고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자 및 전후 복구 지원 국가

    물자 및 전후 복구 지원 국가 현황

    • 일본: 전쟁 물자 및 의료 용품 제공. 당시 전쟁 장비와 의료 물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군사력과 민간 경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
    • 대만: 물자 지원. 대한민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돕기 위해 다양한 물자를 지원.
    • 스위스: 의료 물자 지원. 전쟁 피해 복구와 인도적 지원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제공.
    • 베트남: 물자 지원. 전쟁 중 물자 및 기타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을 간접적으로 지원.
    • 쿠바: 물자 지원.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통해 전쟁 중 대한민국을 지원.
    • 스페인: 전후 복구 사업 참여. 대한민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적 안정화를 돕기 위해 노력.
    • 리히텐슈타인: 전후 복구 지원. 전쟁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해 인도적 지원 제공.
    • 아일랜드: 전후 복구 지원. 경제적 지원 및 사회 복구를 돕기 위해 기여.
    • 이라크: 전후 복구 지원. 다양한 형태의 복구 사업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원.
    • 포르투갈: 전후 복구 지원. 경제와 사회적 복구를 위한 인도적 지원 제공.
    • 교황청: 전후 복구 지원.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재건과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제공.

    6.25 전쟁 기간 중 물자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을 도운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전쟁 물자와 의료 용품을 제공하였고, 대만, 스위스, 베트남, 쿠바 등 여러 국가들도 물자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고 민간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전쟁 이후 복구 사업에도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스페인, 리히텐슈타인, 아일랜드, 이라크, 포르투갈, 교황청 등은 전후 대한민국의 경제적, 사회적 복구를 돕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이들 국가의 도움은 대한민국이 전쟁 후 빠르게 회복하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비공식 625 전쟁 참전 국가 및 물자 지원 국가

    6.25 전쟁에는 공식적으로 참전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병력을 파견하거나 물자 지원을 한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에 기여하였으며, 그 공로가 최근에야 조명받고 있습니다.

    1. 멕시코 멕시코 군인 10만 명도 6·25 전쟁에 미군으로 참전
      • 파병 병력: 공식 집계 없음 (미국 내 히스패닉 계열 참전용사 포함)
      • 특징: 많은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참전하였으며, 멕시코는 당시 35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2. 아일랜드 영국군으로 참전한 아일랜드인들
      • 파병 병력: 공식 집계 없음
      • 특징: 군사 중립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으로 많은 아일랜드계 참전용사들이 참전했습니다.
    3. 푸에르토리코 미군으로 참전한 푸에르토리코인들
      • 파병 병력: 공식 집계 없음 (미국 내 푸에르토리코 계열 참전용사 포함)
      • 특징: 미국 내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대거 참전하였으며, 미국 군대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4. 수리남
      • 파병 병력: 네덜란드 군으로 참전
      • 특징: 당시 네덜란드령이었던 수리남의 병사들이 네덜란드 군으로 참전했습니다.
    5. 콩고
      • 파병 병력: 벨기에 군으로 참전
      • 특징: 당시 벨기에령이었던 콩고의 병사들이 벨기에 군으로 참전했습니다.

    6.25 전쟁은 공식적으로 참전한 국가들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참전하거나 물자와 의료 지원을 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들의 기여는 전쟁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공로가 최근 들어 더 많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협력은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류애와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유엔군 주요 국가들의 기여

    미국의 참전

    미국은 유엔군의 주축으로서 6.25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육해공 모든 전력을 파견하여 전투 전반을 주도했으며, 특히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주요 작전에서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미국은 총 179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33,686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들은 대규모의 물자와 경제적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쟁 중에도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도록 도왔습니다.

    영국과 영연방의 기여

    영국은 약 56,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였고, 해군과 공군을 통해 해상과 공중에서 전쟁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항공모함 작전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가평 전투와 같은 주요 전투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캐나다는 약 27,000명의 병력을 보내며, 가평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전투는 이후 한국과 캐나다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호주는 약 17,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했고, 특히 공군 작전에서 큰 기여를 했습니다. 뉴질랜드 역시 3,794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해군과 지상군에서 활약했습니다.

    터키의 용맹한 전투

    터키는 약 21,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해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터키군은 지형과 기후에 빠르게 적응하여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했으며, 총 96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터키군의 헌신과 용기는 오늘날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깊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의 기여

    프랑스는 약 3,421명의 병력을 파견하였으며, 지평리 전투에서의 활약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4,992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항공 수송과 지상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벨기에도 3,498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소규모 병력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약 5,322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해군 및 육군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의 기여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전투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는 황제의 친위대였으며, 약 3,518명의 병력이 전투에 참여하여 뛰어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121명에 달하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헌신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참전하여 약 5,100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이들은 해군과 육군에서 활약하며 총 213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공산군의 참전 국가

    공산군 참전 규모

    • 북한: 파병 병력 1,000,000명, 전사자 400,000명. 북한은 전쟁의 발발을 주도한 당사자로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였고, 이 중 약 40만 명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 중국:
      육이오전쟁에 인해전술로 북괴를 지원한 마오쩌뚱과 참전 중 객사한 모택동 아들 마오안잉
      파병 병력 1,000,000명, 전사자 140,000명. 중국은 전쟁 초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유엔군의 북진에 따라 참전하였으며, 대규모 인민지원군을 파견해 전투에 깊이 개입하였습니다.
    • 소련 (구 소련 독립국가 -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
      공식 파병 병력은 없었으나, 군사 고문단과 공군 파일럿을 파견하여 간접적으로 전쟁에 개입. 소련은 주로 공군 지원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지원했으며, 실제 전투에도 비공식적으로 참여했습니다.

    6.25 전쟁에서 공산군 측 주요 참전 국가는 북한, 중국, 소련이었습니다. 북한은 약 10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며, 이 중 약 40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중국은 역시 100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였고, 14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소련은 공식적인 병력 파견은 없었지만, 군사 고문단과 공군 파일럿을 파견하여 간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였습니다. 소련의 공군 지원은 북한과 중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결론

    6.25 전쟁은 단순한 남북한 간의 분쟁을 넘어 세계 각국이 개입한 국제적 분쟁이었습니다. 유엔군 측으로 22개국이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인도적 지원과 전후 복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발전된 모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전쟁 속에서 보여준 이들의 인류애와 연대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기고 있으며, 자유와 평화를 위한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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